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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다듬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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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 꽃아!’는 [꼬차 꼬차]일까? [꼬사 꼬사]일까?

김상준

 

언론학박사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 동아예술방송대 교수

지난 1월 아나운서 몇 분이 모인 자리에서 어떤 분이 “다윗에게를 [다위세게]라고 할까요, [다위데게]라고 할까요?”라고 물었다. 별생각 없이 “[다위데게]라고 해야겠죠”라고 대답했었는데, 잠시 후 아차 잘못했구나 싶었다.

 

‘에게’라는 조사는 연음連音을 해서 [다위세게]로 발음해야 한다. 영어권에서 데이비드로 불리는 다윗David(BCE, before the Common Era 997~966)은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거인 골리앗Goliath에게 돌을 던져 쓰러트려 죽인 임금으로 유명하다. ‘다윗’이라는 이름 뒤에 ‘이, 을, 에게’라는 허사인 조사가 붙으면 [다위시, 다위슬, 다위세게]로 발음한다. 다윗이라는 이름 뒤에 실사인 명사 ‘앞, 위, 옆’이 붙으면, [다위다페, 다위뒤에, 다윈녀페]로 발음한다.

[다윈녀페]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 ‘다윗옆’이라는 말은 ‘다윗’과 ‘옆’이 절음이 되면서 [다윋옆]이 됐다가, ‘ㄴ’이 첨가 돼서 [다윈녚]이 되고, 조사 ‘에’가 붙어 [다윈녀페]로 발음한다. 


꽃이라는 말에도 허사虛辭인 조사 ‘이, 을, 으로’ 등이 붙으면 [꼬치, 꼬츨, 꼬츠로]가 된다. 그런데 꽃이라는 말에 실사實辭인 명사가 이어져서, ‘앞에, 위에, 옆에’가 되면, [꼬다페, 꼬뒤에, 꼰녀페]로 절음絶音해서 발음한다.

우리말 조사에는 독립어 자격을 가지게 하는 호격조사 ‘아, 야’ 등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사물 등을 부르는 호격조사가 붙으면 혼란이 생긴다. 예를 들어 꽃을 부르는 ‘꽃아’가 되면 어떻게 발음할지 생각해 보자.

인터넷에는 시에 등장하는 ‘꽃아!’의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이 자주 올라온다. ‘꽃아!'라고 할 때 표준 발음이 “[꼬차]인가요, [꼬다]인가요?” 이런 물음이 올라온다. 국립국어원 등에서는 현행 표준발음법 제4장 받침의 발음 조항에 따라 '꽃아'는 [꼬차]와 같이 발음하는 것이 표준발음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필자는 [꼬사]로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58년 사조思潮 창간호에 실린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시 ‘꽃밭의 독백獨白-사소娑蘇 단장斷章’ 이라는 시에는 ‘꽃아!’라는 감탄사가 여섯 번 나온다. ‘사소’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적인 여인이다. 중국 황실의 딸로 신선의 술법을 배워 진한 땅에 와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낳았다고 한다. 이 시의 끝 부분은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이렇게 이어진다. 이 때는 ‘꽃아’를 [꼬차]로 할 것이 아니라 [꼬사]로 발음해야 한다. ‘꽃아’를 [꼬차]가 아닌 [꼬사]로 발음해도 되는 근거는 표준발음법에 있다.

1988년 1월 19일 표준발음법이 고시되기 이전에는 “우리말은 써놓은 대로 발음한다.”가 대세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들은 그동안 관용으로 발음해오던 것까지 트집을 잡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나의’살던 고향은 [나으이]로 하지 않고 왜 [나에]로 하느냐.
‘영혜’라는 이름을 왜 [영히에]로 하지 않고 [영헤]로 하느냐.
‘계단은 [게단]이 아니라 [기에단]이다.
‘디귿이’는  [디그시]가 아니라 [디그디]이다.
‘히읗이’도 [히으시]가 아니라 [히으히]로 해야 한다.

이런 형태의 항의가 많았었다. 다행히 1988년 표준발음법에서 관용적인 발음을 많이 인정함으로써 압박에서 벗어났었다. 표준발음법 제16항은관용적인 발음을 인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글 자모의 이름은 그 받침소리를 연음하되, ‘ㄷ, ㅈ, ㅊ, ㅋ, ㅌ, ㅍ, ㅎ’의 경우에는 특별히 다음과 같이 발음한다.’로 돼 있다.

디귿이[디그시] 디귿을[디그슬] 디귿에[디그세]
지읒이[지으시] 지읒을[지으슬] 지읒에[지으세]
치읓이[치으시] 치읓을[치으슬] 치읓에[치으세]
키읔이[키으기] 키읔을[키으글] 키읔에[키으게]
티읕이[티으시] 티읕을[티으슬] 티읕에[티으세]
피읖이[피으비] 피읖을[피으블] 피읖에[피으베]
히읗이[히으시] 히읗을[히으슬] 히읗에[히으세]

이것은 한국어 발음법의 획기적인 규정이다. 이 규정처럼 명사 뒤에 붙는 호격조사 ‘아’도 추가해서 예시어로 제시한다면 ‘꽃아’의 발음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꽃아’를 [꼬사]로 하듯이 ‘디귿아[디그사], 지읒아[지으사], 치읓아[치으사], 키읔아[키으가], 티읕아[티으사], 피읖아[피으바], 히읗아[히으사]’ 로 하는 것이다. 사물에 호격조사 ‘아’가 들어간 말을 몇 개 예를 들어본다.

어머니가 아끼던 초가집 부엌아[부어가]!
맑은 향기 피어오르는 꽃아[꼬사]!
아버지의 꿈이 서린 밭아[바사]!
이 한 몸 평생 지탱해준 무릎아[무르바]!

이렇게 한다면 시낭송도 품위를 살릴 수 있다. 아나운서들은 시낭송에 대한 부탁을 많이 받는다. 시낭송에서 발음에 대한 고민을 해 본 기억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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