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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Ilya Pav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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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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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환

 

KBS/BBS/SBS 아나운서

SBS 홍보부장

SBS 마케팅 담당부장

나무 이야기

사시나무, 계수나무, 소태나무,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눈치채셨나요?
자주 들었던 이름들인데 정확히 그 주인공들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아무튼 오래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친숙한 나무들입니다.

사시나무

‘사시나무 떨듯’, 대관절 어떻게 얼마나 떨길래 무서운 사또님 앞에서 바들바들 두려운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끌려온 죄인이 벌벌 떠는 포도청 앞마당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한데 정작 사시나무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땐 네이버가 도움됩니다. 이렇게 생겼구나.... 그러나~ 부족합니다. 느낌은 와닿지 않거든요?

어느 날 어두컴컴한 밤에 공원 의자에 홀로 앉아 있다 그 느낌을 찾았답니다. 인적이 드믄 한적한 여름밤 하늘을 바라보다 옆에 서 있는 나무의 잎에서 파르르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 통직하게 올라간 기둥 줄기는 전혀 미동도 없는데 수관이 풍성한 나뭇잎들만 저마다 각자 떨고 있더라구요. 미세한 잠깐의 바람 흐름이 있었나 봅니다.

아, 글쎄 놀랐답니다. 잎자루마다 매달린 그 나뭇잎들이 엽신(葉身)을 연신 파르르 떠든 그 모습.... 나무 밑에 소개된 안내판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현사시나무’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조상님들이 무언가 죄스런 마음이 들었을 때 동구 밖 밤길에서 느꼈을 그 표현이 와닿았답니다.

1 사시나무잎.png

우연이긴 하지만 은사시, 현사시나무 모두 조국의 근대화는 이루셨지만 현대화는 거리가 멀었던 그 분이 오랫동안 산림녹화 하던 시절에 많이 심어졌답니다. 백양나무, 포플러, 자작나무 이 친구들이 사시나무 같은 집안 사촌뻘입니다. 넓은 강변이나 신작로 까마득한 비포장길 듬성듬성 서 있던 ‘미루나무’도 아마 같은 집 식구로 여겨집니다. 잠깐 글 중심에서 벗어납니다.

미류(美柳)나무였겠지만 표준어 규정 제10항에 충실하게 모음이 단순화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 몇 안 되는 주인공입니다 (괴팍, 케케묵다, 으레, 허우대....등). ‘미루나무’도 모음이 단순화된 형태입니다. 조밀하게 조각조각 잎들을 팔랑거리던 그 미루나무의 모습도 이젠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아마 성냥을 만들어 쓰던 시절 길 넓히면서 모두 베어졌나봅니다. 소풍 길 나무도시락 젓가락이 잘 부러졌다면 틀림없이 미루나무였을 겁니다.

사시나무 잎

계수나무와 옥토끼

달 속의 옥토끼가 방아 찧던 그늘의 주인공은 계수나무죠? 단풍이 노랗게 화사한 나뭇잎입니다. 은행잎은 두툼한 육감이 와닿는 반면 계수나무 단풍은 그을리고 주름진 우리들의 얼굴도 밝게 비추는 재주를 지녔답니다. 여름 잎은 뒷면이 분백색(粉白色)이어서 앞뒤가 선명한 나무입니다. 암수딴그루(자웅이주)인 특징은 내외간 적당한 거리감을 두시던 우리 조상님들을 은근히 닮았습니다.

어디서 볼수 있냐구요? 결혼한 자식들 집을 방문하기가 좀체 쉬운 일은 아니죠? 요즘 딸 아드님들이 사는 동네에 가보시면 동네 정원에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최근에야 정원수로 많이 식재하는 수종이기 때문이죠. 물론 저도 제 자식 사는 곳을 찾아가 본 적은 없답니다. 혹시 실수로 어쩌다, 마지못해, 전혀 의도치 않게, 우연히 자식 집에 들를 때는 그 동네 정원을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몇 그루 무리져 심어져 있을 확률이 큽니다. 가을을 주울 때쯤이면 계수나무 단풍은 초봄에 보셨던 산수유 노오란 색감보다 먼셀 색상표 채도 진한 쪽으로 한칸 정도 더하시면 됩니다.

2 계수나무 단풍.png

계수나무 단풍

3 굴참나무 수피.png

이번엔 굴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도토리 육형제를 명확히 구분하는 재주는 배워도 배워도 돌아서면 잊혀집니다. 저마다 뒤집어쓴 각두(깍정이)가 다르고 게다가 도토리를 둘러싼 비늘잎 돌기가 있거나 없거나 그렇답니다.

코르크가 가장 두툼하게 우악스럽다면 일단 동화 속 주인공 굴참나무일 가능성이 큽니다. 잎자루가 짧고 넓은 잎에 떡을 담아 먹던 나뭇잎은 떡갈나무가 맞습니다. 유난히 한여름에 벌겋게 시들어가는 병든 나무는 신갈나무일 확률 90%입니다. 글쎄 이름도 별난 ‘광릉긴나무좀’이란 녀석이 유난히도 신갈나무에서만 신방 차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뒷산에 노란 비닐 테잎을 칭칭 감고 서 있는 그 나무입니다.

번데기를 벗어나 우화(羽化)하는 성충을 붙잡는 끈끈이롤 포착틀입니다. 엽신(葉身)의 거치(鋸齒:톱니처럼 깔쭉깔쭉 베어져 들어간 자국)와 크기, 도토리의 형상은 모두 다르지만, 표고버섯 골목(榾木)으로 쓰기에는 전부 마찬가지인 참나무 가족입니다. 더 이상 모르기 때문에 물푸레나무로 넘어갑니다.

굴참나무 수피

물푸레나무

서양 동화 <숲속 요정>들은 꼭 물푸레나무 아래 빙글빙글 날면서 나타났었는데 우리 조상들은 물푸레나무로 망치 자루나 도끼 자루 등으로 많이 사용하셨답니다. 유난히 묽직하고 단단한 나무이거든요. 수피에 부정형의 버즘 핀 것 같은 희끗한 무늬가 있는 듯하고 단단한 육질을 가졌다면 물푸레가 맞습니다. 틀렸다 하더라도 쇠물푸레일테니 틀린 게 아니랍니다. 근교에서 등산할 때 주로 능선부 펑퍼짐한 마지막 정상 근처 길에는 아직 꽤 남아 있는 나무입니다. 무거운 벼루를 메고 다닐 수 없었던 조상들께서 먼 길 떠날 때 돌벼루 대용으로 나무 벼루 역할 하던 그 주인공도 물푸레입니다. 그 집 친척들은 미선나무, 이팝나무, 수수꽃다리, 개나리, 쥐똥나무, 금목서...등등입니다. 통상(筒狀) 화관을 뽐내는 녀석들이거든요.

소태나무를 건너뛰었습니다. 소태나무 생김새가 궁금하기는 하나, 보나 마나 그 즙액 맛은 쓸테고 아이들 젖떼는 데나 쓰이던 흔한 나무 아닐까요? 게다가 소태가 제 딴엔 쓰다한들 선후배님들께서 애정 어리게 진행한 프로그램의 하차 통보를 받던 그 어느 날의 쓰디쓴 맛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어느 길이었든 쓴맛의 먹먹함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계시다면 아직은 청년이라는 반증입니다. 때문에 소태나무는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구요. 이미 그 씁쓸한 느낌을 삭히는 나이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4 물푸레나무.png

물푸레나무

5 조팝나무.png

누구나 아는 꽃나무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봄입니다. 이번 봄에도 기다리는 나무의 꽃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눈에 척 알아보는 조팝나무꽃입니다. 한적한 논둑에 띄엄띄엄 무리 지어 흐드러지게 하늘거리는 조팝나무꽃 그 흰빛을 볼 때라야 비로소 봄이 온 것을 느끼게 하는 녀석입니다. 봄꽃 나무 중 진달래는 아직 겨울 기운이 살짝 묻어있는 때에 다소 성급하게 피어나지만, 조팝나무꽃은 완연한 봄이라야만 어쩔 수 없이 수줍게 피어납니다. 저도 있었노라고...

조팝나무는 논둑이나 둘레길 하단에서 부끄럽게 자리 잡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연유로 굽이굽이 산자락 따라 걸을 때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수줍음을 머금고 있는 꽃입니다. 굳이 음양으로 구분하자면 천상 여성스러운 느낌의 꽃입니다. 화사하기 이를 데 없이 예쁜 그 꽃을 가던 길 멈춰서 물끄러미 건네다 보면 먼 옛날 담임선생님 따라 봄소풍 걸어 다니던 그때의 봄으로 데려다주기도 합니다. 꽃이 질 때 통꽃이 어느 날 한순간 깔끔하게 툭 떨어지며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동백의 처연미悽然美와는 달리 조팝나무꽃은 그 화사한 미모를 보여주다가도 전혀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는 매력도 가졌답니다.

나무들처럼 올봄에도 변함없이 다시 한번 인생의 꽃을 꼭 만드시길 바랍니다.

조팝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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