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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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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理想과 現實(Ⅰ)

이규항

 

(전) KBS아나운서실장

KBS 2대 한국어 연구회장

건물에는 外裝과 內裝 (Interior)이 있다. 언어의 表記가 外裝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內裝은 발음인 셈이다. 聖經 말씀에 세상에서 가장 重要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국어 맞춤법 제1장 제1항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語法에 맞도록 함을 原則으로 한다」는 規範은 국어의 表記와 發音法의 헌법 제1조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뜻을 알 수 없어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는 것을 表意/形態主義라고 하는데 表記한 대로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경우를 表音主義라고 하는 데 쓰인 대로 읽는다.

1983년 4월 KBS 한국어연구회 자문회의에서 筆者가 한국어는 표기와 발음이 약 40% 가량 일치하지 않는다는 命題의 發言 이후 새로운 學說은 못 보았다. 한국어는 해방 이후 制度圈 학교 교육에서 발음 교육이 없었는데 대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8·15 해방 이후 美軍政 당시 戰勝國인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을 文化 植民地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이 무렵 우리나라의 한글 專用주의자들은 漢字混用을 반대하는 70%의 국민 輿論에 성공(?), 국가 百年大計의 교육정책을 여론에 부쳤던 것이다. 반면 일본의 語文 관계자들과 학자들은 일본어의 特徵을 제시하여 漢字를 지켜내는 데 성공하면서 그들의 자존심과 主體性을 지켜냈던 것이다. 매년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날일 뿐 童話 朗讀이나 童詩 朗誦 같은 행사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 국립국어원의 前身인 국어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1984년으로 첫 사업이 外來語 表記法이었다. 이때 필자가 ‘스포츠’를 ‘스포쓰’, ‘캐나다’를 ‘카나다’로 훗날 바꾸기 위한 典據의 戰利品(?) 같은 事例가 ‘셔츠/샤쓰’(복수표기)와 ‘캐딜랙’(高級승용차)를 ‘캐딜락’으로 定한 것이다.

 
한편 外國의 연구기관은 언제부터였을까. 이태리는 壬辰倭亂보다 10년 전인 1582년의 <아카데미아 델리 크루스카>, 프랑스는 163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유럽의 언어 風土에서 말씨는 社會 階級과 인간계급과도 正比例한다는 通念을 보여주는 영화로 <my fair lady>가 있었다. 내용은 言語學者 히긴수 敎授가 下層階級 여인(오드리 헵번 主演)의 언어교육으로 優雅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계획을 세우고 친구와 내기를 하는 내용이다. 결국 발음 교육의 성공으로 理想的인 女人像으로 變身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성의 이상적인 조건으로 身言書判, 여성은 말씨·맵시·솜씨가 膾炙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국어 발음교육의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 원인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국민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한글은 세계인들이 놀라는 과학적인 언어라는 優越萬能主義 때문은 아닐까. 미국의 CNN 방송이 어느 해 全世界 言語의 악센트를 중심으로 발음 현상을 조사한 바 있다. 그런데 한글은 매우 배우기 쉬운 문자의 優秀性은 인정하되 “듣기 좋은 국어는 아니다”라는 지적에서 현 국어정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KBS 한국어연구회장 시절에 외국의 한국어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KBS 연수원에서 국어 발음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평양방송에서도 교육을 받은 延邊 아나운서들에게 KBS 아나운서들의 音聲言語의 느낌을 질문한 적이 있었다. “푱양 아나운서들의 말투는 戰鬪的인데 비하요 KBS 아나운서들의 말씨는 마치 音樂을 듣는 것 같습네다.” 여기서 필자는 같은 한국어이지만 발음 교육에 따라서 다른 音像의 언어가 탄생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筆者는 일생 국어 발음 연구에 몰두하면서 살아왔다. 1998년 標準韓國語 發音辭典(共著)을 준비할 때 蘭汀 南廣祐 선생님의 名著인 『한국어의 발음연구』(인하대 출판부, 1989년)가 典據가 되었다. 그 무렵 한 標題語인 ‘白熱燈’에서 국어사전에 [뱅녈등]으로 絶音된 것은 당시 東南方 출신의 편집위원이 ‘촬영(撮影)’을 [촬령]으로 하듯이 方言 발음으로 오해한 것으로 暫定, 현재까지도 저의 발음사전에는 [배결등]으로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미심쩍어 숙제로 안고 있다가 친척 중 과학자에게 正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에디슨은 전기가 一段階의 온도에서는 赤熱, 二段階의 黃熱까지는 熱(Heat)로 사용되던 것을 Filament라는 媒介를 발명 “白色의 熱을 發光”하여 불(Heat)에서 빛(Light)으로 재발명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즉 “白色(實辭) + 열(實辭)”의 絶音法則에 따라 [뱅녈]이 되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국어학을 專攻한 국어학도가 말工場이라는 방송국에서 言語運士로서 몸으로 새롭게 국어를 再發見하게 되었다.

 
특히 필자는 長時間의 野球 中繼와 民俗씨름 중계, 공개방송, 뉴스 등을 통해 長短音의 필요성은 意味의 辨別力뿐 아니라 品位性과 ‘발음의 편리성’의 기능을 몸으로 배웠다. 국어 발음의 精髓인 長短音과 平音과 硬音, ‘ㅔ’와 ‘ㅐ’의 事例에 앞서 두 恩師님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지금부터 27년 전인 1997년 李基文 선생님의 개탄의 말씀이다. “요즈음 나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혹시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 그렇게 되면 큰일인데 하고 걱정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말과 글은 인간의 표현 욕구를 채우는 그릇이다. 對話는 말할 것도 없고 극도로 섬세한 예술적 표현과 극도로 精密한 과학적 표현까지도 능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길을 찾는데 모아져야 한다”. 또한 心岳 李崇寧 박사님께서는 “자네가 중심이 되어 아나운서들이 국어의 표준발음을 지켜주기 바라네.”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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