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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 저 얘기
이정숙
미국 미시간 주립대 VIPP 4년 수학
<준비된 말이 성공을 부른다>등 다수
국내 1호 스피치 컨설턴트로 장관 청문회,
기업 총수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다수
'일단 떠나고 봅니다.'
“들소 맞아. 입김이 수증기처럼 뜨거워.” “진짜 야생 들소가 내려온 거야? 화장실 가고 싶은데…….” 아프리카 세렝게티 여행 중에는 마을이 너무 멀어 하루쯤 야영한다. 현지 가이드 존이 야생 들소가 종종 텐트촌까지 내려온다며 심기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었다. 화 내면 텐트쯤은 종잇장처럼 구겨버리지만 건드리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덧붙이면서. 룸메이트와 숨까지 참으며 들소가 텐트촌을 벗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랜턴 불에 의지해 10m 밖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우리 아들 미국 고등학교 아프리카계 베스트 프랜드 한 명이 커서 외교관이 되었다. 첫 임지가 빅토리아폭포의 나라 잠베지였다. 도착 소식을 사자 등에 탄 멋진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겁 많던 애가 웬일인가 싶어 즉각 메시지를 보냈다. 답변은, 할아버지 대부터 총으로 공격을 받은 적 없는 호랑이는 공복 시에만 사냥 모드로 변해서 잠베지 국립공원에 있는 호랑이들의 경우 배부를 때 사람이 등에 올라타도 괜찮을 정도로 순하다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호랑이 등에 한 번 타 볼 수 있겠다는 꿈이 생겨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니아, 탄자니아 5개국 한 달 여행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세미 패키지였지만 단독 행동이 불가능해 국경 지대의 빅토리아 폭포에서 멀리 떨어진 도심에 기거하는 아들 친구 숙소까지 갈 수 없어 호랑이 등에 타는 꿈은 포기해야 했다. 텐트의 얇은 천 사이로 들소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거나 세렝게티 벌판에 사는 사자를 근접 촬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는 은퇴 후 약 60여 개국을 여행했다. 나에게 여행은 책으로 배운 연애가 실전 연습 없으면 맥을 못 추듯 책으로 배운 인문, 철학, 역사 등의 실전 연습 같은 것이 되었다. 여행에서는 모르던 맹수의 특성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페루 갔을 때는 갑작스런 대통령 탄핵으로 마추피추 가는 길이 시위대에 막혀 방문이 불가능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여행에서는 거대 소금 광산이 있어 로마시대부터 부유했던 아름다운 도시 할스테트로 가자마자 폭우를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 와 소금 약간 사들고 서둘러 돌아 나와야 했다. 여행 초심자 시절에는 화내고 투덜댔지만 경험이 쌓이자 미련 둘수록 남은 여행을 더 많이 망친다는 지혜가 생겨 관용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삼바 축제 구경 후 상파울로 공항에서 귀국 짐을 부치고 탑승을 기다리던 중 예고 없는 집중 호우로 항공기 전편의 출항이 취소되었다. 짐은 부쳤는데 공항 전체에서 영어 사용 가능 직원은 딱 두 명,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내 짐은 어디에?” 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영어 사용 가능 직원 만나기가 하느님 만나기보다 어려워 마냥 기다려야했다. 우리 팀은 여행사 인솔자의 기지로 북새통을 뚫고 상파울로 시내의 다른 국제공항에서 당일 출발하는 비행기가 섭외되어 셔틀 버스를 타게 있었다. 버스는 오래 방치된 재래식 화장실보다 몇 배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모두들 당일 비행기 타게 된 게 어디냐며 악취를 견뎠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일행 중 한 명이 인솔자에게 “왜 그렇게 냄새나고 더러운 버스에 태우느냐?” 며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 여행 많이 해 보면 더 미친 인간도 많다는 것을 알기에 웃어넘길 수 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멋진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비싼 돈 주고 사서 고생하는 것이 여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에서 배운 지식들의 실행 모드는 물론 덤으로 관용과 용서의 태도까지 익힐 수 있어 나는 무릎 건강이 허용하는 한 계속 새로운 여행 스케줄을 체크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