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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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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항 아나운서_edited.jpg

한국어의 理想과 現實(3)

李圭恒

 

(전) KBS아나운서실장

2대 KBS 한국어 연구회장

陰地와 陽地

初行길에서 電鐵을 換乘할 때 迷路같아 고생할 때가 있는데, 찾아가기도 힘든 이 설계를 누가 했는지 존경심이 갈 때가 있다. 건축자재를 물리적으로 날랐을 남녀人夫들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작년 가을 전철의 노인석에 앉아있을 때 앞자리에 70세를 바라보는 初老의 紳士가 갑자기 나의 빈 옆자리에 앉으면서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KBS가 남산에 있을 때 라디오게임(최초의 퀴즈 공개방송)에 출연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航空社에서 機長으로 근무하다 停年을 했습니다. 선생님 건강이 여전하십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보람을 모처럼 느꼈다. 얼마 후, 역시 전철에서의 일이다. 나는 겨울철에는 베레帽를 쓰는데 모자 앞쪽에 단풍잎 캐나다國旗 잎새의 배지를 붙이고 다닌다. 캐나다는 大陸間컵 世界野球大會 중계방송의 인연이 있는 나라이고, 특히 스위스인들이 알프스보다 아름답다는 러키마운틴에 반해 있기도 하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紳士 한 분이 “저는 캐나다 교포입니다. 먼저 배지가 반가워서 보다가 선생님 얼굴을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고교생’(토크 공개방송)에 출연했었습니다.” 나는 敎師 출신도 아니면서 교육자와 같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초년 아나운서 시절 아나운서라는 직업인이 ‘네잎크로바’라는 노래를 불러 무궁화 大賞 新人歌手賞까지 受賞하면서 Legacy media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아나운서라는 人氣 직업으로 剩餘價値의 덕을 본 셈이다. 그러나 이 곡의 작사자, 작곡가, 편곡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陽地에서 일한 인연으로 過分한 대접을 받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나의 眼目으로 저 인물은 왜 TV에 자주 나오는지 납득이 안 되는 방송인들도 있다. 스포츠계에도 어느 인기종목의 선수가 단 한 번의 금메달로 평생 돈방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非인기종목의 어느 선수는 올림픽의 금메달과 두 體級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席卷 우승했으면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최근 중국 관광의 재미 가운데 서커쓰 관광이 있는데 목숨을 건 神技의 曲藝師들은 명예와 돈 모두 거리가 멀다.

君子固窮

論語에서 理想型은 뜻밖에도 知之者, 즉 인생을 아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인생은 의미가 아닌 재미에 있다는 뜻이다. 秋史가 末年에 즐겨 쓴 글귀가 遊戱三昧이다. 문화사학자 호이징어는 인간의 존재는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君子固窮이란 생활이 窮하고 힘들 때도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동서양인의 인생 定義가 일치한다. 나는 근자에 집안의 憂患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신혼여행지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選好했던 제주도가 아닌 閑麗水道였다. 歸家할 때 統營의 어느 有志께서 風蘭을 선물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6점의 怪石에 풍란을 올리거나 붙여서 기르며 즐기고 있다. 이 가운데는 스위스 알프스의 쇠뿔 모양의 岳山 마테호른 같은 水石에 石附하거나, 제주도의 산굼부리같이 움푹 패인 水石에 얹혀놓아 마치 비행기에서 울창한 숲을 鳥瞰하는 듯해 보이는 것도 있다. 이번 여름 햇볕 때문에 일부 누렇게 된 부분이 있게 되었다. 종로 5가 골목에 風蘭 단골 할머니 가게가 있는데, 영하의 날씨에도 늘 나와 계신다. 어려운 시간을 내어 다섯 촉의 風蘭을 사와 새로 丹粧을 해 주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더욱 단단해 지면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君子固窮의 命題를 내 자신에게 臨床實驗한 셈이다.

盆栽人間

盆栽는 바위틈이나 절벽 같은 척박한 상황에서 자라던 나무를 花盆에 심어 古木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생활예술로 중국과 일본에는 500년 된 작품도 있다. 미국이 독립 200주년을 紀念하던 해 일본은 意圖的으로 210년生 盆栽를 선물한 적이 있다. 어느 해 봄 延邊에 방송언어교육차 출장 갔다가 백두산 天地를 그곳 방송인들과 자가용으로 오른 적이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모퉁이를 돌아갈 즈음 怪奇한 나무가 눈에 띄었다. 순간 盆栽감으로 適格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900여 차례 外侵을 당해왔던 우리 민족성이 떠올랐다. 天稟의 DNA로 逆境을 잘 견디어온 인물이 떠오르는 한편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평소 자주 하는 말이다. 세계에는 “우리나라에서 좋은 사람처럼 좋은 사람도 없지만 나쁜 사람처럼 복잡하게 나쁜 사람도 없다.” 盆栽人間은 外觀上으로는 멀쩡하거나 그럴듯하게 보이는 人格不具者, 심한 경우 人格破綻者를 이르는 말이다. 다양한 盆栽人間 가운데는忠臣같은 奸臣/大奸似忠型도 있다.

木馬旅行

내가 태어나서 대학 2학년 무렵까지 살던 곳은 오늘날 서울대병원 정문에서 7시 방향으로 800여 미터 떨어진 동네이다. 동네의 좌측에는 庭園에 造景樹가 있는 일본인들의 洋屋집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주 보는 우측에는 韓屋 마을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宦官의 大闕같은 기와집은 한국인 거주자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나의 집은 사람으로 치면 80 高齡의 古家로 뒤꼍의 기둥은 많이 기울어져 있어 버팀목으로 받쳐야 했다. 6.25 전쟁 전에는 한밤중에 昌慶苑의 호랑이 우는 소리를 자주 듣기도 했다. 뒤꼍에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타던 古物 木馬가 있었는데 10살 때까지 망가진 木馬에 앉아서 여행놀이를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換節期와 밖에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두툼한 옷으로 體溫을 즐기면서 飮酒의 시간을 享有하고 있다. 이 특수한 행복의 緣由를 成人이 되어서야 金素雲 선생님의 수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室內 溫氣의 利己心으로 바깥에 寒氣를 세워놓고 즐기는 利己的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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