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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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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KBS 9시 뉴스 앵커
전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KYWA) 이사장
1981년 KBS 8기 아나운서, 3개월 연수 후 KBS 9시 뉴스 앵커로 12년간 뉴스 진행
《9시 뉴스를 기다리며》, 《홀리 스피치》, 《신은경의 차차차!》,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잠언 읽고 잠언 쓰자》 등 지음

글쓰기는 나의 인생

삶의 골목골목에서 느낀 이야기로 펴낸 책들

어렸을 적 나의 꿈은 내 이름을 건 책 한 권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꿈은 내가 쓴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그 위에 팔을 걸치고 서서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다. 어려서 꿈은 이루었고, 지금 꾸는 꿈은 이루기가 요원하다. 그렇게 쌓아놓으려면 수십 권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올해 내 인생 아홉 번째 책을 출간했다.

중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얄팍한 잡지에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책’이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월간 <샘터>라는 손안에 드는 자그마한 잡지였고, 거기 나온 유명인들은 고운 글로 읽는 사람의 마음에 설렘과 동경을 자아냈다. 나도 커서 유명인이 되어 샘터에 내 글을 내고 싶었다. 학교 앞에 작은 서점이 있었는데, 거긴 책 좋아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랑방이었다. 학교 앞을 오가며 시도 때도 없이 들르는 돈 안 되는 손님들과 주인 내외는 가족처럼 지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문예반에 들어갔다. 앞장서 책임지는 일이라면 죽어라 싫어하던 나였는데, 어쩌다 문예반장을 맡게 됐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시조 시인 이우종 선생님이 지도하신 진명문예반은 당시 대학에서 주최한 글쓰기 대회를 휩쓸었다. 특히 운문 부문에 문정희 시인 같은 특출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문예반장은 실속 없이 심부름만 도맡아 해서 교내시화전 같은 행사를 하면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홍보 활동을 하는 게 주 업무였고 수업 시간에 온전히 공부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연락 업무와 회의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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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가 되어 이름이 알려지자, <샘터>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 그리고 일간신문, 월간 여성잡지, 클래식 음악 전문잡지에 정규적으로 글을 쓰느라 본업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드디어 1992년에 내 이름을 건 책 세 권이 한꺼번에 세상에 나왔다. 초산인데 세쌍둥이를 낳은 셈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음악 그림책 번역이었다. 클래식 음악과 쉽게 친해질 수 있게 안내하는 입문서 그림책인데, 1988년부터 번역에 착수했으나 편집 팀에서 국악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여 공동 저자를 물색하느라 4년이 걸린 뒤 《(그림이 있는) 음악여행》(예하)으로 출간됐다.


FM 음악방송을 진행하면서 음악 잡지에 꾸준히 글을 쓴 것을 모아 음악 수필집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곁에 있습니까》를 펴냈다. 그즈음 KBS 9시 뉴스 앵커로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을 때여서 방송일과 뉴스 앵커를 열망하는 후배들을 위한 길잡이 책으로 《9시 뉴스를 기다리며》를 쓰게 되었다.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내고 있던 김영사에서 출간했고, 나는 글자 하나하나, 글 한 꼭지 한 꼭지를 지극 정성으로 써서 완성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도 책의 성격도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세 권을 거의 동시에 마무리 지었고, 공교롭게도 나는 곧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날마다 생기는 작별 파티 약속과 원고 교정, 유학 준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책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도 못 보고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아이만 낳아놓고 훌쩍 떠난 매정한 엄마처럼 영국으로 유학을 가 버리고 말았다. 영국에서 소포로 세 아이를 받아보았다.


한참 뉴스를 진행하던 중 공부하러 떠났으니, 《9시 뉴스를 기다리며》가 가장 많이 팔렸다. 유학을 가지 않고 남아서 홍보도 하고 인터뷰에 응했다면 더 많은 부수가 팔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세 권의 인세를 합산해 보니 놀랍게도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사용한 생활비의 액수와 거의 똑같았다.


그때부터 재정에 대한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 나는 떼돈을 벌 팔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돈 드는 일이 있을 때, 예를 들어 유학을 가고 싶을 때 돈이 없어 못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단 생각이 들었다. 필요하면 다 마련해 주시고, 또 꼭 쓸 만큼만 허락하신다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돌아와 결혼했다. 뉴스 앵커였던 남편은 정치에 발을 들였고, 배우자도 선거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글도 쓰고, 잡지 인터뷰도 했다. 보조 연설도 하고, 상갓집에 문상하러 가서 설거지도 하고 음식도 날랐다. 그즈음 내가 목욕탕에 가서 주민들 등을 밀어주어 남편이 당선됐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그때 느꼈다. 세상의 평판이라는 것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는 것, 그리고 양쪽 다 100%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두 번 한 선행이 완전 그 일만 한 것처럼 전해지니 말이다.


선거란 좋은 공약만 해서 표를 얻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에 대한 나쁜 소리도 많이 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없는 소리도 해서 해를 입히는, 이른바 네거티브(Negative) 선거운동이 난무했다. 짧은 시간에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어서 책을 썼다. 네거티브에는 정공법이 효과적이다. 차분하게 읽어보면 앞뒤 사정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쓴 책이 《사랑이 뭐 길래 정치가 뭐 길래》였다.


십여 년 동안 몸담았던 정치판에서 남편은 은퇴하고, 나도 섣불리 그곳에 발을 담그려 했다가 뜨거운 맛을 보았다. 남편 대신 나간 선거에서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가까이 광야 생활을 하다가 <애프터 하프타임>이란 세미나를 만났다. 나는 누구인지, 후반전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인생의 하프타임에 인생 사명을 발견하고 결단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말하기’로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강연도 하고 책도 쓰고, 방송에 나가서도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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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의 말을 어떻게 경건하고 건강하게 할까를 연구해 《홀리 스피치》를 썼다. 그 이후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하던 나는, 이후 수없이 많은 강연과 방송을 통해 홀리 스피치, 하늘에 속한 말하기 비법을 전달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하기 ‘홀리 스피치’는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일반 독자에게도 말하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홀리 스피치》의 일반인 버전인 《신은경의 차차차!》를 썼다.


그즈음 대학교수직을 은퇴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내 삶도 본격적으로 후반전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나는 시니어 신문에 정규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었다.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는 아직 60대도 되지 않은 젊은 내가 왜 시니어 신문에 글을 쓰는가 하며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심리학, 건강, 좋은 먹거리 등 관심 있는 주제들이어서 나이 듦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도 60대에 들어섰고 글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6년 전부터 성경 말씀을 읽어드린 유튜브 <신은경TV>와 <위드바이블>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들어주셨다. 특히 잠언과 시편은 쌍둥이처럼 조회수 30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각각 2천 개 가까이 달린 댓글을 보니 하나같이 “축복해요”, “감사해요”, “더 많이 녹음해 주세요”, “건강하셔야 해요” 등 축복과 감사의 메시지와 기도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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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경 저자 책 표지 모음 >

이렇게 말씀을 듣는 것도 좋아하시는데, 베껴 쓰는 필사도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겨 《잠언 읽고 잠언 쓰자》를 출간했다. 나온 지 서너 달밖에 안 됐는데, 여기저기서 잠언 필사 단이 꾸려져 매달 꾸준히 필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은혜가 몹시 크고 놀라웠다. 남편의 암 수술을 앞두고 친정어머니의 희귀병 간호를 하면서, 공부와 직장업무의 중압감 속에서 겨우 시간을 내어 필사했는데 쓸 때마다 각자 형편에 맞는 특별한 은혜를 부어 주셨다는 기쁜 소식들이 들려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언에 이어서 일반인들도 좋아하는 시편도 필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제 나의 열 번째 책, 《시편 읽고 시편 쓰자》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낸 책을 높다랗게 쌓아놓고 팔을 괴고 서서 사진을 찍고 싶은 꿈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요원하다고 하니,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냥 열 권만 쌓아놓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로 팔을 괴고 사진 찍으세요.”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래도 내 꿈은 여전히 삶의 골목 골목에서 느낀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을 내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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